드디어 1주일간의 격리에서 벗어났다. 새벽에 일어나니 몸이 개운해졌다. 운동이 부족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모든 게 나아졌어. 일주일간 엄마와 함께 지내니 요즘 엄마라는 걸 더 잘 알게 됐다. 동생이 엄마를 돌보느라 너무 고생했다. 매끼 밥을 새로 하고, 입맛이 없다고 하면 달래거나 노인들에게 결국 먹이고, 약을 꼭 먹이고, 자기 전에는 꼭 안약을 챙겨드렸다. 전담 의사와 같다. 동생이 없었다면 어머니가 코로나19 광풍을 과연 극복할 수 있었을까.
3월 들어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2015년 11월 24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어머니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읽었다. 어머니를 절대 요양병원 같은 곳에 보내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날 MC였던 이금희와 패널로 출연한 효녀 가수 현숙도 울었다. 둘도 솔로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솔로가 울었다고 농담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집에서 그 방송을 봤는데 이후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흐른 요즘 들어 어머니의 건강이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요즘은 그 걱정이 사라지면 잠이 잘 오는 것 같다. 잠을 잘 자야 건강하다. 만취해 코를 골며 자는 일이 줄어들면 내 몸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동생이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3년 정도 되었다. 동생의 술병 때문에 매우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 고민도 완전히 사라졌다. 두 형제가 술을 마시지 않자 어머니가 좋아졌으니 다시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요즘 내가 술자리에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물을 마시면서 술에 취해 즐길 수 있다.
24일이면 이번주 1년이다. 1년 마시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앞으로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첫째 딸이 대학생일 때 “아버지는 실제로 중요한 이야기는 술을 마시고 한다”며 나를 공격한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한마디다.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만취하면 그럴 수 없다. 술이 나를 키웠다고 볼 수도 있지만 술 때문에 나는 많이 늦었을 수도 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는 많은 것을 잃었다.
출판학교에 주목해 주는 것 같다. 주위로부터 많은 의견이 전해지고 있다. 우선 운영위원회부터 만들 생각이다. 무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보수를 드릴 수는 없다. 개인이 만드는 출판학교지만 공정과 상식 있는 운영이 돼야 오래 갈 수 있다. 상주하면서 나를 돕는 사람도 구해야 한다. 자기 일을 주로 하면서 자신을 돕는 것이니 잘 설득해야 한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면서 10명 이상이 자유롭게 만나려면 아마 4월 중순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충분한 논의를 하면 된다.
나에게 엄마가 온 것은 2009년 3월이었다. 만 13년이다. 11년 동안은 혼자 대접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2년 반 전 동생이 와서 엄마를 돌보며 이제 나는 자유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제야 사전 준비를 마친 셈이다. 코로나19 확진은 이를 최종 점검하는 기회가 됐다. 이제 아무 장애도 없다.
벌써 독서 시범학교는 언제 시작하냐고 저를 재촉하는 분들이 계신다. 독서 시범학교는 규모가 크다. 독서 시범학교는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출판학교를 하면서 사전 점검해 볼 수 있다. 이제부터 서서히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유엔이 정한 생애나이 기준으로 나는 올해까지는 청년이다. 내년부터 중년이 시작된다. 중년은 79세까지다. 중년이 되면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가 80세부터 시작하는 노년기에도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중년의 삶에는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