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 my Name the Meaning

#이름 #이름의미 #재민 #실재 #Amen #Obedience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그 아이에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을 제외한 이름 두 자를 한자로 붙여주는데,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돌림 글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21세기 들어 이름의 의미를 한자로 하는 경우 외에 한글 또는 발음상의 영어 이름, 기독교 신자의 경우 성경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누구도 자신의 자녀 이름을 비속어나 가치를 떨어뜨릴 의사를 양보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의 작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경주 이씨의 41 ‘세’ 손익재 공파로 ‘재’돌리기를 사용하고 있다. 거기에 ‘백성’을 지어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로 여름에 물난리가 나면 또래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또 은근히 흔한 이름이라 같은 반에 이재민이 2명 있어서 키가 작았던 내가 뒤에 s(small)를 붙인 기억이 있다. 나는 내 이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이름은 단지 그 사람을 부르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안에 어떤 의미대로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인지했을 때가 나의 자아(ega)가 형성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의 첫 자아 인지는 초등학교 2~3학년 때 기억한다. 수도가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기계적인 로봇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주연 배우로 주목받고 있고, 나를 서포트해주는 사람들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생이 된 후 나의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처음 비전을 갖고 삶의 방향을 잡았을 때 그 방향도 제가 모르는 추상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에 계속 기도만 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이 돼서야 처음 19세가 됐을 때 받은 비전을 적용하는 노력을 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도구로 삼은 게 교수자였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대학생의 기본적인 존경과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기에 좋은 위치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을 걷기 위해 직장도 교육센터 연구원으로 시작해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소명을 받아 직장생활을 모두 내려놓고 새 대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성경 교리를 다루는 조직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철학을 접하게 됐다. 기독교 역사와 시대의 종교철학자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접하게 됐고, 그 속에서 수룬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개념에 대해 알게 됐다. 현대사회의 실존은 하이데거의 현존과 유사하게 사용되며 인간 중심의 경험에 의한 철학으로 사용되지만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존재를 논하므로 그 부분에 대해 많은 묵상을 하게 되었다. 내 이름의 의미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실제적인 해석을 통해 ‘사람이 있다’, ‘존재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의미를 발견하게 됐다.

실존(Existence)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실존 개념을 정의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하이데거가 있다. 각 철학자의 정의에 따라 실존 개념이 바뀌게 되는데 나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개념에 가까운 실존을 주로 사용한다. 실존을 주로 논하지만 나는 실존주의가 아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란 20세기 전반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철학사상으로 인간의 존재와 인간적 현실의 의미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시 파악하려는 인본주의 운동이다. 이 때문에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ism이 붙으면 다른 의미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은밀할 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은밀 중에 죄를 짓지 않는가. 거리에서 손을 들어 기도한 바리새인의 모습이 우리 교회 안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한가.성령으로 거듭나 중생한 우리는 매일 성도다운 삶, 즉 성결한 삶을 살아가려는 신성한 욕망이 있다. 이는 육체적 소요가 아니라 성령의 소욕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우리 안에 성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열망이 우리의 양심에 의해 나타난다.

Q.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형성되어 살아가는 존재인가?

[Logos+Intellectus+Faith+Foundation=Existence]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자이자 전지전능하시고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의 주관자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이 내재성과 초월성의 속성을 가진 분임을 믿고 성령을 통해 교통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도 같고 내일도 계신 분이다. 현재를 인지하고 살아가는 나는 실존(existence)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계속해서 나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러한 ‘나’라는 개인의 실존이 형성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Logos)과 이성(Intellectus), 그리고 성경에 기반한 신앙(Faith) 마지막으로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문화, 역사, 교육, 시대의 토대(Foundation)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전통적인 신학의 가치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말씀, 흙으로 처음 있는 사람의 아담을 만든 역사를 믿는 신앙은 성령을 통해 증거가 된다. 현재 존재하고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믿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는 존재인 ‘나’에게 길을 걸어갈 때 ‘What’과 ‘How’가 아닌 ‘Amen’과 ‘Obedience’하면서 걸어가는 ‘나’ 이재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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