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6(1)_오시라쿠 공습의자 라엘의

1978년 8월 이스라엘은 7대 5대의 F-16A/B 구매 의사를 밝혔는데 당시는 카터 행정부의 무기 수출 제한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러나 1978년 8월 이스라엘은 캠프데이비드에서 이집트와의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이를 캠프데이비드 협정이라고 부른다.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후,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후 워싱턴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친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에 따라 F-16 구매도 승인됐다.

첫 75대는 이란의 Peace Zebra 사업으로 주문된 F-16이었으나 팔레비 왕조 몰락 후 이란은 F-16 구매를 취소했고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에 인도됐다.

78-0308(100)

F-16 첫 공중전이라면 F-1678-0314가 2대의 MI-17과의 교전이었다.미사일이 빗나가면서 1대가 도망쳤지만 다른 1대를 기관포로 격추했다.

1975년 프랑스-이라크 원자로 협정 이후 이라크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오시락(오실라스+이라크)으로 불리는 Tammuz 1과 Tammuz 2를 짓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이라크에 원자로 연료로 12.5kg의 우라늄 235 판매도 승인했다.

이스라엘은 원자로의 완전 가동을 우려해 1979년 사보타주로 2개 원자로의 노심을 훼손해 원자로 건설을 방해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인 오시락은 건설이 연기되더라도 결국 완성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이들이 군용 핵연료와 원자폭탄을 만들 것이라는 심증을 내놓았다.당시 이스라엘의 Menachem Begin 총리는 차기 정부가 이 작전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초조해했다. 한편 이스라엘군은 Yitzhak Ben-Israel 소령의 지휘 아래 효율적인 파괴를 연구하고 있었다.수많은 계산 끝에 두 발의 무유도 폭탄으로도 원자로의 노심을 파괴하는 것은 충분했지만 연구진은 확실히 하자며 그 수를 18발로 늘렸다.그리고 연료 제약으로 인해 가능한 한 짧은 거리를 비행해야 했고 레이다와 지상관측소에 걸리지 않았다.모사드는 추락한 조종사가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이라크 지폐를 많이 준비했고,

요르단으로부터 영공 통과를 얻었다.요르단과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적대적이었지만 속으로는 우호적이었던 여담으로 제4차 중동전쟁 때 요르단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보복을 두려워해 이스라엘에 군대를 보냈지만 대대도 안 되는 병력을 보냈다는 것이다.

한편 1980년 9월 30일 이란은 스카치소드 작전으로 F-4 2대를 보내 오시라크 원자로를 타격하고 냉각 시스템에 손상을 입혔다.

Menachem Begin은 정부 회의에서 오페라 작전에 대해 이런 연설을 했는데 거대한 시계가 우리 머리 위에서 째깍거리고 있습니다. 후세인은 우리의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핵폭탄을 만들려고 하고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핵을 쏘는 것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오페라 작전을 승인했다.

여호와께선 이 점에 대해 아무것도 알리지 마십시오.이는 IDF 정보군 수집부장 에브라임 라피드 대령이 참모총장 라파엘 에이탄 중장에게 받은 지시였다.오페라 활동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모사드는 오시라크에 5기의 지대공 미사일이 설치된 것을 확인했으나 웬일인지 지대공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타격 경로와는 정반대인 남쪽에 배치돼 있었다.이는 이란의 재공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격 전날 지대공 미사일이 사라지면서 공격의 난이도는 높아졌다. 사후 보고에 의하면, 이것들은 원자로의 안쪽으로 옮겨졌다.

공격 당일 참모총장과 공군사령관이 별도의 항공기를 타고 에티온기지로 향했고, 이와는 별도로 모사드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에티온기지로 향했다.

공격일을 5월 14일 일요일로 잡았는데 굳이 일요일로 잡은 이유는 이란 공습 이후에도 남아 있던 소수의 프랑스 노동자들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투기에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연료와 무장이 채워졌지만 정비병들은 전투기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 모사드 요원이 비행기에서 내리다 넘어지면서 서류가방을 떨어뜨렸고 가방이 열려 수많은 이라크 지폐가 하늘을 날았다.

정비병 중 한 명은 전투기의 타격 목표가 어딘지 알아차리고 기절했고 모사드 요원은 다른 정비병의 도움으로 도망갈 돈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첫 편대(호출부호:Scalpel)는 117비행대 사령관인 작전사령관 지브러스 중령이 이끌었다.Amos Yadlin, Hagai Katz, Duby Yafe가 소속됐다

2편대는(호출부호 Cluster), 110비행대 사령관인 Amir Nahumi 중령이 이끌었다.이 편대에는 Yiftach Spector, Israel Shafir와 마지막 비행기인 8번은 훗날 이스라엘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27세의 Ilan Ramon 대위가 조종하였다.

제133비행대대 F-156대의 조종사들은 브리핑룸의 두 번째 열에 앉았다. 이들의 임무는 대공포대를 공격하고 이라크 전투기가 공습을 가할 경우 기습대를 방어하는 것이었다.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이륙 허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총리의 명령으로 임무가 취소되었다. 왜냐하면 야당 대표가 총리에게 위험한 도박에 조종사를 넣는 것은 무모하다는 풍자적인 편지를 보냈다.편지를 받은 총리는 야당 대표만 이 작전을 공짜로 알릴 리 없고 작전에 대해 너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며 조종사의 목숨이 위험하다며 작전 취소를 명령했다.

작전은 오페라 작전으로 명명된 후에 재개되었고,

6월 7일

사이드와인더와 스패로우로 무장한 F-156기의 호위 아래 MK.842발과 윙칩에 사이드와인더를 장착한 8대의 F-16이 오시락 원자로를 타격하기 위해 날아갔고 이들은 최대한 가까이 날아가 1대의 비행기로 보여주려 했고 아랍어로 통신을 하고 민항기로 속이며 1,100km를 비행했다.

한편 요르단왕과 후세인은 이 시대 관계가 좋았는데 왕이 아카바만에서 자신의 요트를 타고 휴식을 취하던 중 이스라엘 전투기 여러 대가 날아갔으며 왕은 정보부에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라크로 날아간다고 이라크인들에게 알려달라고 전했다.상대는 확인했다며 전화를 끊었다.그러나 이 소식은 이라크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요르단 장교가 아니라 이스라엘 정보부의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요원들이었다.

타격대는 무선 침묵 상태에서 100m 이하에서 400노트로 비행했고, 동시에 이스라엘 하늘에서는 전선통제기 지원기 구조대를 포함해 70여 대의 비행기가 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사막 주민들은 이스라엘 전투기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그중에는 이스라엘기인 줄도 모르고 인사를 건넨 이들도 있었다.

90분 뒤 타격대의 시야에 오시라크의 커다란 돔이 나타났고 F-16은 속도를 600노트로 끌어올린 뒤 순식간에 10,000피트까지 상승해 폭탄을 투하했다.

F-16 폭탄은 16발 중 14발이 명중했고 폭탄은 원자로 돔에서 파괴돼 내부까지 날아갔다.이 공습으로 프랑스 기술자를 비롯해 11명이 사망했다.프랑스 기술자는 모사드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왜 공습 당일까지 원자로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성공했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됐다.이와 함께 아직 인도되지 않은 22대의 F-16이 남아 있어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보류됐다가 정상적으로 인도됐다.

출처 :

https://www.israeldefense.co.il/en/content/thirty-years-bombing-iraqi-reactor

https : // de . zxc . wiki / wiki / Osirak

https : // de . zxc . wiki / wiki / Operation _ Opera

https : // de . zxc . wiki / wiki / Operation _ Scorch _ Sword

https://www.f-16.net/f-16_users_article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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