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싸? 스톡홀름 증후군 자신을 납치한 범죄자

지난해 말 경북의 한 모텔에서는 7년 만에 가족과 마주한 30대 여성이 눈물을 흘린 채 앉아 있었다. 결혼 관련 전문 사기단에 걸려 거액의 돈을 날린 뒤 감금까지 당하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A 씨(32)였다.

최근 수년간 감금된 여성이 유괴범들을 감싸는 행동을 보여 충격을 가했다 │ free image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기단을 현장에 일망타진했지만 얼마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기단을 붙잡아 조사하던 경찰에 A 씨가 사기단을 시댁 식구라고 부르며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두둔하기 시작한 것이다.경찰 관계자는 “A씨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기단에 의해 끌려가 폭행당한 흔적까지 있지만 피해를 본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는 현상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은 공포심에 의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는 현상을 말한다. 범죄심리학의 용어 중 하나로, 인질극을 당한 자가 인질범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범죄에 동조하는 등의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스웨덴 도시 이름이 증후군의 명칭으로 사용된 이유는 1973년 스톡홀름에서 벌어진 인질 강도 사건 때문이다. 당시 한 은행에 강도가 들어 6일 만에 4명의 은행 직원을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였는데 어이없게도 이 기간 인질과 범인들은 서로 신뢰하고 교감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경찰 조사에서 피랍자들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범인들이 자신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다고 말해 오히려 범인들이 좋아하게 됐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널리 알린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 ☜ wikimedia

재판 과정에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증인으로 불려온 4명의 은행 직원들이 모두 인질범 편에 서서 변론을 벌이는 뜻밖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변론 과정에서 범인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증언은 진술을 거부하고 오히려 범인을 옹호하는 진술을 해 판사 및 검찰측을 당혹스럽게 했다.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스웨덴의 범죄학자이자 심리학자 닐스 베이로트 박사는 이전의 인질극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심리 형태였다고 밝히고 이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하지만 당시에는 이 증후군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지 못했다. 북유럽에서 일어난 사건 중 하나이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상식 밖의 사건이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실제로 스톡홀름 증후군이 유명해진 것은 이듬해인 1974년 미국에서 일어난 인질극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재벌이던 허스트가의 딸 패티 허스트가 급진 좌파 게릴라들에게 납치된 사건으로 납치 기간 중 이들의 신념에 감화되어 나중에 은행을 습격하는 범죄에 적극 가담하는 등 게릴라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리마 증후군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반대되는 사고 방식

스톡홀름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진화적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이 2014년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당시 논문을 발표한 학자들은 미국 오리건대의 미셸 스칼리스 스기야마 교수와 그의 동료로 여러 사례와 설화 등을 토대로 조사한 끝에 스톡홀름 증후군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여성이 생존 및 생식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진화시킨 전략이라고 정의했다.스기야마 교수는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보다 전쟁의 피해를 보았다며 따라서 자신과 후손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독특한 생존전략을 진화시켰을 것이며 스톡홀름 증후군도 그 일환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스기야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여성의 상황은 과거 전쟁이나 폭력에 직면했던 여성의 경우와 매우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감금된 채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대받는 상황이 전쟁으로 포로가 된 경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그는 포로가 되거나 인질이 된 여성들이 생존 및 생식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저항을 포기하는 독특한 생존 전략을 진화시켰음이 오늘의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납치범이 인질로 설득되는 심리현상을 리마증후군이라고 한다.onedio.co

그렇다면 납치범이 인질로 설득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수하는 경우를 종종 TV나 신문을 통해 접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형태의 하나인데, 학계에서는 이를 ‘리마 증후군(Lima Syndrome)’이라고 부르는 리마 증후군이란 인질범이 인질로 동화하는 현상으로 1996년 12월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인질극에서 유래했다.당시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페루 반군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해 400여 명이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범들은 126일이나 인질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인지도와 정이 깊어졌다.의약품 반입을 허용하거나 가족과의 안부 편지를 보내거나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받는 등 스톡홀름증후군처럼 일반적인 납치사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범죄 심리의 또 다른 기록을 남겼다.나중에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범죄심리 현상을 ‘리머증후군’이라고 명명하며 스톡홀름증후군과는 정반대 개념으로 심리검사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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