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수십년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 대기업도, 고도 성장한 항공 여행업계에서도 일생을 회사에 바친 직장인을 해고시켰다. 전문직들도 기술 발전이라는 더 큰 파도에 부딪혀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를 실감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용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력 전환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코노미 조선’은 코로나 19개 고용시장에서 가장 입지가 좁아졌다고 평가받는 화이트칼라 ‘문과’ 사무직을 중심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들이 어떻게 경력을 계발해 나가야 하는지를 안내한다. [편집자 주]
입사 1년차 김신입(가명) 씨는 취업난 속에서 서류난사(무차별적으로 여러 회사에 채용원서를 낸다는 뜻의 신조어)를 벌인 끝에 합격한 식품회사의 영업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업이 재미가 없어 그는 매일 수십 차례 퇴사할지, 몇 년을 참고 이직할지 고민하고 있다.
입사 6년차인 한모 대리(가명)는 6년째 화장품업체 오프라인 지점을 관리하고 있다. 손에 익은 일 자체는 즐겁지만 앞으로는 수요가 거의 없는 직무를 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이직을 생각하게 됐다.
입사 20년차 임원인 황 이사(가명)는 한 조선회사 임원이다.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혹시 내가 사양산업에서 평생을 보낸 건 아닌지, 은퇴 후 내가 설 자리는 없는지 걱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고용시장에 한파를 몰고 왔다. 직장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팬데믹(감염증 대유행)이 가속화된 고용 지형 변화는 직장인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다양한 연차 직장인들은 발전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어떻게 커리어를 관리해야 할지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최후의 보루인 전직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코노미 조선은 10월 12일 직장인을 위한 경력 관리 방법에 대해 10년 넘게 인터뷰했다. 엔터웨이파트너스에서 전기·전자업종을 담당하는 유윤동 대표이사, 유니코서치에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담당하는 권영주 이사, 소비재를 담당하는 문선경 상무, 벤처피플에서 제조업과 건설을 담당하는 김동원 이사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신입(경력 1~3년차), 주니어(4~10년차), 벤처피플에서 제조업과 건설을 담당하는 김동원 이사의 인터뷰를 통해 신입(경력) 및 경력 1~3년차), 주니어(4~10년차),
회사원을 대표하는 김신입, 한 대리, 황 이사의 경력 고민에 대한 처방을 받아 헤드헌터들이 매칭을 성사시킨 직장인의 전직 사례도 담겨 있다.
유윤동 엔터웨이 파트너스 대표이사 아주대 전자공학◇키워드 1│업종은 바꾸어도 직무는 평생 지속된다
헤드헌터들은 신입사원의 경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꼭 원하는 직무로 오래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업종은 나중에 충분히 바꿀 수 있지만 직무를 바꾸는 것은 훨씬 어렵다며 조심스럽게 첫 커리어를 시작할 것을 강조했다. 직무가 전혀 맞지 않는 김신립 씨의 경우 회사 내에서 부서를 바꾸거나 다른 회사에 다른 직무신입사원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명 중고 신입(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구직자가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다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것)을 뜻한다.
유윤동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를 억지로 13년이나 23년 한다면 주니어반이 됐을 때 경력을 거스르고 경력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타이틀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자신의 업무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취업한 많은 젊은 직장인들이 이후 주니어급이 돼 직무를 바꾸려 하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한 직무를 5년 이상 수행하면 이후 갑자기 다른 직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처음부터 나와 잘 맞는, 오래 하고 싶은 업무를 맡아 일관성 있게 커리어를 관리해야 한다.”
◇ 키워드2 │ 직무 중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라
한편 희망하는 직무를 맡고 있는 신입의 경우 같은 직무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을 계속 준비하기보다 약 3~4년간 한 직무의 전문성을 익혀 전직의 기회를 엿보라고 요구하였다. 특히 모든 직무를 막론하고 반드시 데이터 관련 지식을 익혀 향후 경력을 다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딩 지식이 없어도 일반적으로 6주 정도의 훈련을 받으면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KNIME’를 사용할 수 있다. 헤드헌터들은 탈잉 등의 온라인 수업을 통해 이런 도구 사용법을 익히고 자신의 실무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고 도출한 결과를 반영해 성과를 내는 경험은 훌륭한 전직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영주 “빅데이터는 모든 산업·직무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수단이다. 최근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매우 많지만 아직 숙련된 전문가의 공급이 거의 없다. 자기계발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몸값을 높일 좋은 기회다. 과거에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국한된 데이터 분석 능력이 이제 소비재·금융·제조 등 모든 산업군에서 요구된다. 신입생의 경우 데이터 관련 고등교육을 더 받아 선택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기업리서치센터에서 소비자 조사 업무를 하던 신입이 뇌공학, 인지심리학 석사를 마친 뒤 연봉을 올려 외국계 기업의 UX(소비자 경험) 기획 직무로 자리를 옮긴 사례도 있다.”
유윤동 최근 주요 스타트업들이 통계학과나 수학과 출신처럼 및 빅데이터 관련 지식을 갖춘 인재를 많이 채용하고 있다. 기술은 직전에 등장한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뒤에 등장할 미래 기술도 모두 수학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니코서치 권영주 이사님 펜실베이니아대 행정학 석사, 전 지적재산연구원 연구원◇키워드 3│얇아진 업종 간 경계, 산업군을 뛰어넘어라
주니어급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전문성을 기반으로 가장 전직을 많이 하는 직급이다. 헤드헌터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들의 전직은 업종 간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제조업 소비재 등 전통산업군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쿠팡, 아마존처럼 한 기업이 제조 유통 서비스 등 여러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면서 산업 분류에 따른 기업의 희망인력상과 역량 구분이 희미해졌다고 설명했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있는 경력자를 최우선으로 선발해 온 과거에는 동종 업종의 경험이 없으면 이력서 검토 단계도 통과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기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IT업계로 연봉 등의 조건을 낮춰 이직하는 것보다는 기존 산업에서 혁신적인 업무를 맡는 것이 커리어를 더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법이 되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있었다.
6년간 화장품업체 오프라인 지점을 관리해온 한 대리의 경우 의류업체와 협업하며 꾸민 매장관리 경험을 포트폴리오로 삼아 의류업체 영업관리로 옮길 수 있다. 또는 회사 TF팀에 들어가 기존 매장에서 진행하던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해 보고 이를 전자상거래 업종으로 옮길 때 디지털 역량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권영주 산업 고도화와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 기업이 만나는 고객군의 범위가 넓어졌다. 뿐만 아니라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양도 늘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이종산업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실무자를 데려와 벤치마킹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명품 기획을 담당하던 실무자가 IT관련 제조업체로 전직한 사례가 있다. 이 회사에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 마케팅하려다 보니 VIP 고객 관리에 능한 실무자를 발굴해 스카우트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전직하고자 하는 업종의 기업들이 최근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찾아내 이력서와 면접에서 강조해야 한다.”
◇키워드 4│일관된 경력으로 스페셜리스트가 되어라
주니어급 헤드헌터들은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주니어반이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회사에 단호하게 노(No)를 외칠 용기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내 전체 경력과 관련성이 없는 직무에 소비하는 시간은 경력 단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회사 부서 변경 제안을 거절하거나 최악의 경우 퇴사도 불사해 경력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특히 개발자처럼 상대적으로 은퇴 시기가 이른 직군의 경우 주니어급은 내가 이 회사에 남아 제너럴리스트로 관리자급으로 승진할지, 실무를 계속할 수 있는 회사로 옮겨 개발자의 길을 계속 갈지 결정해야 한다.
김동원 “대다수 기업은 한 분야의 전문가인 스페셜리스트를 원한다. 과거 제너럴리스트는 한 회사 내에서 여러 부서를 경험하며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임원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들은 회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내에서는 승진하기 쉽지만 회사 밖에서는 경력의 매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사내 관리자급 승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아니면 주니어급 때부터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경력 계획을 세밀하게 짜고 회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유윤동 “10년 기준으로 직무가 최소 3번 이상 바뀌지 않듯이 7~8년을 한 직무로 채워야 전직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긴다. 그 회사는 경력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게 자신의 직무를 자신의 목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김동원 벤처피플 이사 단국대 정치외교학 시니어클래스는 한 업계와 회사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쌓은 사람이다. 하지만 시니어 클래스도 두 집단으로 나뉘고 헤드헌터의 경력 처방도 다르다.
우선 차장부장 등 중간 관리자급 직장인은 이직보다는 자기 회사에 머물러 임원급의 전문성과 경험을 더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실무자를 지휘 관리하는 입장이어서 현장에서 전직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쌓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전직도 상대적으로 쉽지 않아 회사를 나오면 계약직 또는 파견 형태의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헤드헌터들은 중간관리자는 실무자도 임원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고 연차휴가도 비싸 회사가 데려가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사나 부사장 등 임원의 경우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만큼 헤드헌터를 통한 일명 C(Chief) 수준으로의 전직을 노려볼 수 있다.
헤드헌터들은 조선회사 20년차 임원인 황 이사의 경우 외국어 공부에 전력을 기울여 외국계 기업으로의 전직을 준비할 것을 권유했다. 국내 기업보다는 여전히 채용 수요가 있는 외국계로 옮기려는 임원들은 외국어 역량을 키우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조언이었다. 또 납품업체 등 협력업체와의 네트워크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협력업체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 만큼 지인 추천 등을 통한 전직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워드 5│외국계 기업을 획득하려면 ‘프리토킹’ 필수
유니코서치 문성경 상무 뉴욕대 호텔경영학의 김동원 임원급은 국내 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에서 상대적으로 전직 수요가 활발하다. 이 같은 전직 기회를 잡으려면 영어 등 외국어 능력을 갖춰야 한다. 최근 학력 등 스펙이 매우 뛰어난 한 제조업 대기업의 임원이 외국계 회사 전직 면접에서 떨어지자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언어의 벽에 부딪치고 있는 경우였다. 반면 한 조선업계 영업직무 임원은 영어 능력을 활용해 유럽계 회사의 세일즈 디렉터로 성공적으로 전직했다.”
문선경 「 「영어를 못하는 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다. 전직하는 임원을 위해 따로 통역을 맡기는 것은 큰 부담이다. 특히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외국인과 화상회의를 하는 일이 많은데 영어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합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개발자·기자 등 영어 실력이 좋지 않은 직군에서 갈수록 영어를 잘하면 전직 메리트가 크다.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영어 실력은 특정 어학시험 점수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무리 없이 영어로 진행할 수 있느냐다.”
◇ 키워드 6│ 이직하고 싶은 업종 관련 경력이 없다면 온라인을 활용하라
문선경 시니어 클래스의 경우 갑자기 새로운 업종의 일을 할 기회를 잡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런 경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과 관심을 알리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패션업계 임원이었던 분은 식품업계로의 이직을 희망했지만 관련 실무 경험이 전무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획 직무에서 전문성을 살려 블랑쉬, 퍼블리 같은 글을 공유하는 플랫폼에 식품업계 관련 보고서를 꾸준히 올렸고 이런 경험을 이력서에 기재해 전직에 성공했다.”
권영주 최근 시니어 클래스 채용이 늘고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 온라인 활동을 지원자의 전문성과 디지털 능력을 일환으로 평가해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실제로 한 고객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업무 관련 글을 꾸준히 올렸고 스타트업에서 이에 큰 가산점을 준 사례도 있었다.”
◇키워드 7│오늘의 고객사, 공급업체가 미래의 동료
문선경 은퇴 후 고객사, 협력업체 등 함께 일한 회사에 스카우트 제의가 와 일자리를 얻는 시니어 클래스도 많다. 식품 관련 대기업에서 일하던 임원급이 함께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식품 관련 중견회사로 자리를 옮긴 사례가 있다. 평소 협력업체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좋은 인상을 남긴 덕분이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업계 사람들은 모두 내 미래의 회사 사람들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