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원의 시시콜콜 과학사] 빼앗긴 땅에 핀 우리 꽃에 대한 기록

[서효원의 시시한 과학사] 빼앗긴 땅에 핀 한국 꽃에 대한 기록 – IT조선 > 칼럼 해설 > 외부 칼럼 (chosun.com)

[서효원의 시시한 과학사] 빼앗긴 땅에 핀 우리 꽃에 대한 기록 ◆ 사진 속 꽃에 대한 에피소드 2년 전 가입한 한 SNS 비공개 야생화 동호회에서는 가끔 꽃에 대한 댓글 격론이 일기도 한다. 구분이 애매한… it.chosun.com

[서효원의 시시한 과학사] 빼앗긴 땅에 핀 우리 꽃에 대한 기록 ◆ 사진 속 꽃에 대한 에피소드 2년 전 가입한 한 SNS 비공개 야생화 동호회에서는 가끔 꽃에 대한 댓글 격론이 일기도 한다. 구분이 애매한… it.chosun.com

빼앗긴 땅에 핀 우리의 꽃에 대한 기록/서울·효우오은 박사의 사진 속의 꽃에 대한 에피소드 2년 전에 가입한 한 SNS의 비공개 야생화 동아리에서는 가끔 꽃에 대한 코멘트 격론이 일어나곤 한다. 구분이 애매한 꽃의 사진에 대한 분분한 의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거의 모든 경우 장기간 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몇몇 지도자급의 의견 일치에 귀결하거나 1,2로 갈라진 의견에 줄을 만들어 보내곤 한다. 꽃으로 벌어먹는 이쪽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면서도 현장 경험치가 이만저만이 아닌 사람이 많아 역시 도중에 살짝 꼬리를 내리거나” 좋겠다”만 누르는 소극적인 참여 후, 결론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몇명을 제외하고는 생면부지의 회원들과 가진 논쟁 속에서 잠시 지나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1년전쯤에 회원 한명이 올린 사진 속의 식물에 대한 밤 늦게까지 코멘트전이 벌어진 적이 있지만 누구나 한번은 본 적이 있는 한장의 사진 중에 우연히 찍힌 들꽃에 대한 것이었다.

정미의병(1907년F.A. McKenzie). 고종의 강제 퇴위와 조선의 군대 해산을 자행한 일본에 저항하여 봉기한 정미의병은 비록 경성 탈환에 실패하여 퇴폐했더라도 이후 만주 등지의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 사진은 1907년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신문 극동 특파원의 매켄지(F.A. McKenzie)이 현재의 경기도 양평(경기·양평)지역에서 촬영한 정미 의병의 사진에서 회원 간의 논쟁은 사진 속의 의병 중 관군 복장을 한 사람 앞에 핀 꽃(화살표로 표시)에 관한 것이었다. 흑백 사진에 실루엣처럼 찍힌 것이어서 어떤 종류의 꽃인지 정확히 밝히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지만 우리 동호회 회원들이 이를 그냥 넘어갈 이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지휘관 같은 정규 군 복장의 사진 속의 군인의 발 밑에서 무릎 높이로 자라고 꽃을 피웠다 이 식물이 엉겅퀴의 종류이라고 주장하는 그룹과 “몇가지”이라고 주장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것이다.

고려엉겅퀴(왼쪽)와 개똥구리(오른쪽). / 사진제공: 자란화(페이스북 동호회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이 사진이 8월에 촬영된 것으로 배경이 산임, 왼쪽에 보이는 식물의 꽃의 외관이 빛을 받은 엉겅퀴의 두상화에 보이는 것 등을 들어 엉겅퀴의 일종, 특히 고려 엉겅퀴와 주장하는 그룹이 힘을 받을 무렵이다. 누군가가 이 사진을 찍은 양평 부근에는 고려 엉겅퀴가 피어나지 않았다는 분포 이론을 들어 엉겅퀴 그룹의 주장을 무력화시킨다. 꽃 모양이 총대(오가타)에 보이고, 식물체의 크기 등을 보고엉겅퀴의 종류라기보다는 몇가지 종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후자 쪽을 이뤘으나 이 정도의 해상도의 사진에서는 누구도 정확히 식물의 종류를 알 수 없었다. 엉겅퀴류인 몇가지 종류인 약한 것 같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좀처럼 밟혀서는 죽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다수 나오고, 더 이상의 반론 없이 정리된 바 있다.여류 화가의 마지막 작품 속에 핀 할미의 꽃 아래의 그림은 1935년 화가 정·박찬영이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최고 상인 창덕궁 상을 수상한 작품”소녀”이다. 정·박찬영은이나·헤속과 함께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 화가로서 큰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프랑스 유학을 통해서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이나·헤속과 달리 일본에 유학한 화가 이·영일에서 국내에서 사사한 전·박찬영의 그림은 일본의 채색화풍이다.

정찬영 『소녀,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으로 원본은 소실되어도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녀가 이 작품 이전에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 화려한 채색화인 것과는 달리 이 그림은 전혀 화려하지 않다. 주로 동식물과 정물만 그림의 소재로 한 이전의 그림과는 다른 인물화라는 점도 특이하다. 원화가 소실하고 도록로만 전해지는 이 그림은, 도록 사진조차 무색, 흐려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소녀의 초점을 잃은 시선과 빈 봄 나물 바구니는 왜인지 슬픈 느낌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평단에서는 “미국 전 회장에 쪼그리고 앉아 인기와 선전을 얻은…”,”한폭 채화에서 조선 정조와 분위기를 볼 수 있고 조선의 봄을 볼 수 있다”라고 극찬했지만 그림의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형식적인 차림으로 보인다.봄볕에 웅크리고 앉은 소녀의 발밑에 핀 꽃은 개나리와 함께 한국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들꽃인 할미의 꽃이다. 왜 예전의 제 그림과 전혀 다르게 화려하지 않은 들꽃 수와와 소박하고 불쌍하게 보이는 소녀를 그리며 무기력한 조선의 정서를 담으려고 했는지 의도가 자못 궁금하다. 이 그림을 그렸다 1935년 이후 별다른 그림을 남기지 않아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을까? 당시 그림을 배운 그녀의 그림이 일본의 채색화풍이라는 시선에 대한 반성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의 작품에 무슨 꽃을 그리느냐 내가 정한 것이지만 한번은 식물학자의 남편과는 상의한 적이 없을까? 기록에 따르면 식물학자였던 남편 도·봉소프(한국 최초의 식물명 집었다”조선 식물 향명집”(1937)의 공저자)교수는 귀국 후 서울제 전 교수로 재직하면서, 회기동에 집을 지어 한국의 꽃으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키운 꽃 속에서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한국의 봄을 알리는 가장 한국적인 꽃 하나인 할미의 꽃을 추천한 것 아닌가. 할미 꽃 학명의 종류 명칭이 “koreana”라고 붙여진 만큼 한국 특산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빼앗긴 오카야마에서 봄을 기다리는 정서를 담는 데 딱 맞는 꽃이라는 것을 남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일본인 학자에 의한 식물 조사와 연구 기록을 제외하면 일제 강점기 중 한국에서 꽃에 대한 사진과 그림의 기록은 매우 어렵다. 피폐한 정서가 꽃을 완상하는 여유를 없앴기 때문일 것이다. 웃음과 행복, 축복과 위안이라는 보편화한 정서를 가진 꽃에 대한 당시 기록이 드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본인이 기념품으로 제작 판매하던 당시 조선 기생의 사진, 일본인과 조선 부자가 출입했던 조선 호텔의 장미원의 사진, 타국의 왕궁을 훼손하고 당당하게 세워진 창경궁 식물원의 사진 기록물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는 화려함 외에 여과되는 정서가 포함되지 않았다.나비야 제비야 웃기지 마.맨드라미, 들 말의 꽃에도 인사를 안 한다고. 너무 바삭바삭한 기름을 바른 사람들이라 다 보고 싶다.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올까”의 구절이다. 시에서 말한 맨드라미는 민들레,야 마의 꽃은 제비꽃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엉겅퀴, 삵, 할미 꽃, 민들레, 제비꽃···.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 있던 꽃들은 당시의 사진과 그림과 문학 속에서 좋은 날을 기다림과 희망을 대리했던 것이다. 표현은 하되 의도를 숨겨야 하는 시대에 예술가와 작가들이 감추어 둔 코드의 매개체로서 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비록 화려하게 피어 있지 않아도, 예나 지금이나 꽃은 언제나 그렇다.※서울·효우오은 박사는 건국 대학 식물학 박사로 네덜란드 와게닝겡 UR국제 식물 연구소 방문 연구원과 북극 다 야마시나 학문 기지 하계 연구단 고등 식물 연구 책임자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건국대, 강원대, 강릉 대학교 강사를 지냈고 현재 농촌 진흥청의 화훼과장으로 한국 원예 학회, 한국 식물 생명 공학회, 도시 농업 연구회 이사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한국 식물학회, 한국 육종 학회 정회원입니다.서울·효우오은 박사 IT조선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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