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어휘의 차이, 문화와 인지 언어와 사고: 언어의 상대성

▲언어와 사고=우리는 흔히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말을 듣는다. 지구상에는 6000개 이상의 언어가 있었다. 이들 언어는 발음이나 철자, 문법 구조, 참조의 의미 등에서 매우 다르다. 언어 표현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다. 언어에 따라 어휘 세분화도 매우 다르다.

언어상대성 가설 워프와 사피어(Whorf-Sapir)는 언어와 인지(혹은 사고)의 관계에 대한 유명한 가설을 제안했다. 이들은 언어가 인간의 인지, 즉 사고를 결정한다는 언어결정론과 사용되는 언어에 따라 인간의 사고도 달라진다는 언어상대성 가설을 제안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인간의 사고가 결정된다는 가설이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로 한 언어의 의미를 다른 언어로 완전히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제시하였다(Eysenck & Keane, 2005; Hunt & Agnoli, 1991).

밀러와 맥닐(Harley, 2001; Miller & McNeill, 1969)은 언어상대성 가설을 세 가지 수준으로 분류했다. 즉, 언어→사고, 언어→지각, 언어→기억으로,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입장은 강한 입장에서 볼 수 있고, 언어가 지각을 결정한다는 입장은 중간 수준에서 볼 수 있으며, 언어가 기억에만 영향을 미친다면 약한 입장에서 볼 수 있다.언어 상대성 가설은 언어와 인지의 관계에 대한 강한 입장에 해당한다.

어휘 차이는 크게 초점색(흰색, 검은색 등 11개의 기본색)과 비초점색으로 분류된다. 초점색은 사람이 자주 접하는 대표적인 색이고 비초점색은 초점색 사이에 위치한 사용 빈도가 낮은 색이다. 영어권 사람들은 비초점색을 정확히 인정할 수 있다(Berlin & Kay, 1969).

만약 언어가 색채의 지각을 결정한다면 색채에 대한 어휘를 다양하게 가진 사람이 빈약한 언어를 가진 사람에 비해 색지각이 달라야 한다.이는 모든 색을 밝고 따뜻한 색(mola)과 어둡고 차가운 색(mili)으로 나타내는 뉴기니 원주민인 다니족 사람들은 모든 색을 모르기 때문에 밀리만으로 지각해야 한다는 것이며 영어권 사람들과 달리 초점색과 비초점색의 재인정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슈(1973; Solso, 2005)의 다니족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두 민족 모두 색상에 대한 재주가 매우 뛰어났다. 또 다니족 사람에게 초점색과 비초점색을 보였다가 재인시켰을 때 비초점색보다 초점색에 대한 재인도 좋게 했다.이는 색에 대한 어휘가 풍부한 미국인과 둘만의 진드기족과 색 지각에서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연구다. 그러나 이는 언어 상대성 가설의 강한 입장을 지지하는 증거는 아니다.

엘리스(Ellis, 1973)는 자연색을 사용하지 않고 낯선 시각적 자극에 임의적 명칭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그 가설을 검증했다. 그 결과 시각 자극이 지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시각 자극의 기억에는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언어상대성 가설의 약한 입장이 타당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언어 어휘가 시각 자극의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어휘가 기억을 과장할 수도 있다. 즉 기억색(memory color) 효과다. 사과색, 포도색 등의 어휘를 가지고 있다. 빨간색을 기억할 때 이것을 사과색으로 기억하면 나중에 실제로 지각한 색보다 빨간색을 보았다고 반응할 수 있다. 이는 어휘가 색의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거가 된다(Hunt & Agnoli, 1991).

문화와 인지색의 명칭과 수는 언어에 따라 매우 다르지만 색명을 사용하는 데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즉, 사용되는 언어체계와는 상관없이 색에 대한 인지체계가 존재한다. 그 체계는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Berlin & Kay, 1969).

언어에 따라 사용되는 색명은 다르지만 사용되는 색 언어는 인지체계가 위계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가 인지를 결정하기보다는 인지가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된다. 문화와 산업의 발달로 세상에 대한 어휘적 명칭이 세분화되면 지각된 정보를 개념화하거나 범주화하는 과정, 정보의 인지적 표상과정, 논리적 추리나 판단과 결정을 하는 과정 등의 인지과정에 효율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Barsalou, 1992; Borlditsky, 2003; Hunt&Agnoli, 1991).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촘스키(Chomsky)는 언어와 사고가 서로 독립된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했지만, 인지의 발달이 시작되고 언어 발달의 측면에서 볼 때 분명히 사고는 언어를 앞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인지발달을 대표하는 피아제(Piaget)는 사고가 언어를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고츠키(Vygotsky)는 언어와 사고가 발달상 처음에는 독립적이지만 점차 두 체계가 상호관련적인 체계로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론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두 체계의 관계가 상호작용적인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언어상대성 가설의 가장 큰 약점은 그들이 주장하는 강한 입장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사고가 무엇인지 정의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고 언어에 대한 사고의 영향력에 대한 증거도 없었다(이재호 김소영 옮김, 2007). 그러나 언어가 사고나 인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는 연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Eysenck & Keane, 2005).

출처 : 현선영 외 2015, ‘현대심리학의 이해’ pp 233~237,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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